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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아타리쇼크란? 전설의 게임 E.T. Atari 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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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리내 입니다. 오늘은 아타리쇼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타리쇼크란? 1983년 비디오 게임은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1982년 연말 과열된 비디오 게임 판매 경쟁으로 

발생한 미국 비디오게임 산업에서 일어난 위기로 "아타리쇼크(Atarin Shock)합니다.

게임 업계에서는 당시 위기를 1929년 10월 24일 주가 대폭락 사건인 검은 목요일에 비교할 정도로

큰 사건이였는데 이후 게임 소프르웨어의 과잉 공급에 의해 소비자가 흥미가 급속히 떨어져

단번에 시장 수요가 사그라드는 현상을 아타리 쇼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977년 미국 아타리에서 발매된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VCS(아타리 2600)은 게임기에 내장되어 있던 게임 프로그램을 룸을 카트리지에서 제거하고 직접 카트리지를 교체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인 슈퍼컴, 패밀리컴 등의 원조죠 :)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VCS>

1977년 7,5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아티리의 매출액은 3년만에 22억달러로 증가 합니다.

소위 대박을 쳤죠. 만들기만 하면 게임이 팔리고 어마어마한 현찰이 들어오던 때였습니다.



아타리 쇼크의 시작은 팩맨 PAC-MAN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타리는 아케이드용의 팩맨을 VCS용으로 출시를 했습니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팩맨은 오락실에서 즐기던 그 팩맨이 아니였습니다.

속도가 턱없이 느리고, 중간에 캐릭터가 사라지는 어이없는 버그도 있었습니다.

팩맨이라는 이름값 때문에 700만장 이상 그해 판매가 되었으나 사람들은 형편없는 게임에 실망하여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아타리는 그들의 불만을 벌거 아닌 것으로 넘겨버렸죠.

왜냐하면 700만장 이상 팔렸으니까요...

수백 수천개의 게임중 팩맨처럼 하나만 성공하면 된다고 판단을 했을까요? 아타리는 계속해서 게임을 찍어냅니다.

그리고 처참한 실패작, 아타리를 몰락시킨 바로 전설의 게임 Atari 2600 E.T  출시됩니다.

 


1980년대 VCS용 팩맨으로 재미를 본 아타리는 당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E.T를 무려 당시 2,500만달러라는
거액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판권을 사들였습니다.

로열티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아타리는 정작 게임 개발비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려 게임출시를 하려고 했죠.

1982년 크리스마스까지 6주가 남았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게임은 쓰레기 게임이였습니다. 왜 이게임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뿐만아니라.

느린게임진행, 조악한 그래픽, 버그버그버그만 난무했죠. 

그렇지 않아도 비디오게임의 수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 전설의 게임 아티리의 E.T는

기름을 부은 격이였습니다. 


사람들은 환불을 요청하고 불매운동까지 벌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자 불신은 게임 전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팔리지도 않은 전설의 게임 ET Atari 2600의 350만장은 뉴멕시코의 한 사막 쓰레기 매립장 뉴 멕시코주 알라모고도에 전량 묻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2014년 묻어버렸던 게임팩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수집가들에게 비싸게 팔린다는 ^^;;)

 



1982년 30억 달러에 육박했던 비디오 게임 시장은 불과 1년 만에 1억 달러 규모로 축소가 되고

1983년 한해 아타리는 5억 3,6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게 됩니다.

1984년 워너 커뮤니게이션은 아타리를 매각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스티브잡스의 롤 모델이였던 아타리라는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게임의 본질은 즐거움인데... 이 재미를 잊어버리고 잘 팔리는 게임으로 매출 올리기에만 급급했던 당시 상황이

아타리쇼크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타리쇼크 이후 비디오게임 시장은 3년의 시간만 필요했습니다. 

바로 1985년 일본의 작은 게임회사 닌텐도의 화려한 시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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